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(​3) 개독교의 탄생
2017-07-27 11:20:43 | 처치IT | 조회 1693 | 덧글 0
 3. 개독교의 탄생
 
사이버세계에 대한 우리 기독교계의 대응은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. 지금은 4.0시대라고 부른다. 인공지능, 무인공장, 가상현실 등으로 예상되는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에서 차용하여 4.0을 많이 쓴다. 몇 단어로 정리가 똑 부러지게는 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일자리4.0, 마케팅4.0, 4.0교육 등 4.0이 지향점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. 하지만 교회의 IT 사역에 어둠을 선사한 것은 2000년대 중후반에 인터넷에서도 대유행한 2.0이다. 2.0은 개방, 공유, 참여라는 세 단어로 그 철학을 표현했다. 홈페이지도 세 정신을 구현하는 웹2.0의 추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.

웹2.0의 철학을 반영한 사이트라 하면 홈페이지의 특정한 내용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도록 열어 주고(개방) 그 내용을 퍼갈 수 있도록 허락하고(공유)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(참여) 콘텐츠를 최대한으로 담은 사이트라 할 수 있다. 이 때 중요한 것이 그 철학을 쉽게 혹은 자동적으로 구현되도록 하는 보조적 기술들이었다. 예를 들어 어느 한 사이트에 새로운 글이 게시되면 공유코드를 적용한 다른 사이트들에 거의 실시간으로 그 글의 일부와 링크가 공유되도록 하는 RSS(Real Simple Syndication or Rich Site Summary) 등과 같은 것들이다. 교회홈페이지는 물론 그 당시 기독교포털로 분류되는 그 어떤 사이트도 그런 기술을 채용한 곳은 없었다.
 
인터넷에 푹 빠진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들은 대부분 웹2.0 기술이 적용되어 있었다. 고객이 많으니 당연한 조치였다. 지금이나 그 때나 마찬가지겠지만 인터넷에 빠져 사는 사람 중에는 반기독교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. 그래서 기독교계의 좋지 않은 소식은 한 군데에 뜨면 수많은 다른 사이트에 자동으로 공유되고 곧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. 누군가를 비난하는 글은 강력한 전파성이 있다. 예전과 달리 순식간에 온 나라에 펴졌다. 
어떤 사안에 관하여 별다른 주관이 없던 사람은 그에 관하여 처음 듣는 내용을 비교적 쉽게 인정하게 되고, 그 인식을 다시 바꾸려면 스무 번 이상의 반대편 이야기를 들어야 겨우 가능하다고 한다. 여론형성의 법칙이다. 기독교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많은 넌크리스천(non-Christian)들은 인터넷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반기독교적 콘텐츠를 접하면서 안티크피스천(anti-Christian)으로 쉽게 변해 간 것이다.
 
교회나 기독교계의 어른들은 사이버세계의 변화를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. 사이버세계 자체가 생소한데 그 변화를 감지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은 이해할 수 있다. 더욱이 문제였던 것은 교계의 사이트들은 그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.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사이트에서 수익모델을 창출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. 수십억을 들였다고 하는 모 기독교포털은 지속적으로 자본잠식을 계속해서 힘들어했다. 책임자는 사이버세계에 복음은 전할 방법을 강구하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. 귀한 헌금을 모아서 투자하며 잘 키우라고 하는 목사님의 눈치에 속이 타들어 갔을 테니 말이다. 예수님의 눈짓과 손짓보다 헌금을 한 성도와 목사님의 눈짓이 더 가까운데 어쩔 것인가.

다른 곳에서 다 적용되고 그 부작용을 느끼기까지는 기독교계의 웹2.0은 그래서 한 군데도 없었다. 교계의 좋은 소식은 기껏 기독교포털이나 교회홈페이지만 실리니 그 소식은 결코 저절로 확산이 될 수 없었다.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그 사이트를 알기도 어렵고, 혹 그 곳에 방문을 했더라도 혼자만 보고 나면 그걸로 그만이었다. 자동화된 기능이 없었으니 일일이 퍼다 이 곳 저 곳에 나를 수고를 하기도 번거롭고 어려운 데다 저작권 문제도 신경을 써야 했으니 말이다. 자동으로 원 글이 실린 사이트로 유도되어 저작권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웹2.0을 구사하는 교계 밖의 사이트들과는 전혀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.

그런 환경 속에서 실제로 우리나라를 살리고 섬기는 그 많은 헌신은 묻혀버리고 크고 작은 교회의 비리와 모욕적인 소식들만 인터넷 속에 편만하게 된 것이다. 급기야 네티즌 중 누군가가 기독교를 다르게 부르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.
개독교의 탄생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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